|
현장 속으로-미국산 쇠고기 논란 속 한우농가 표정
|
|
|
 |
20일 새벽 경북 영주시 가흥동의 우시장. 이날 장을 찾은 농민 대다수가 향후 한우가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관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농민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안전성 논란을 벌이는 것보다 사료가격 안정책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시 한우농가 피해를 줄일. |
“어차피 수입될 것 … 한우농 피해 줄일 대책 논의해야”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안전성 논란이 엉뚱하게 한우쪽으로 번지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어차피 수입을 막지 못할 상황이라면 한우산업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관심을 모으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정부가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할 경우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중단토록 명문화하기로 했다는 방침을 발표키로 한 20일 새벽 경북 영주시 가흥동의 우시장. 경북 내륙권에선 소 거래가 가장 활발하다는 것을 입증이라도 하듯 이날 이 시장에 나온 한우는 송아지 245마리, 큰 암소 110마리 등 모두 355마리나 됐다. 큰 암소 가운데는 아직 젖을 떼지 않은 새끼와 함께 매물로 나온 이른바 ‘켤레소’도 여럿 보였다.
하지만 거래가 성사되는 모습은 쉽게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될 경우 한우산업 전망이 불투명하다고 여긴 농민들은 송아지 입식철을 맞았어도 관망하는 자세가 두드러졌다. 상인들도 큰 암소값이 더 내릴 수 있다고 보고 흥정만 할 뿐 매입을 꺼렸다. 가축시장을 운영하는 영주축협에 따르면 이날 송아지는 70마리(거래율 28.5%), 큰 암소는 27마리(거래율 24.5%)만 새 주인을 만났다.
◆“어차피 수입하기로 한 것”=이날 영주 우시장과 전북 익산 등 현장에서 만난 농민들은 하나같이 미국산 쇠고기 안전성 논란이 확산되는 것을 크게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논란이 불거져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자 일부 언론은 국내산 쇠고기도 문제가 있을 것이란 내용의 보도를 시작했고, 결국 한우를 포함한 모든 쇠고기가 안전하지 않다는 식으로 왜곡된 여론이 형성돼 최종적인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경북 안동시 남선면에서 이날 영주 우시장에 소값 동향을 살펴보러 나왔다는 임모씨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논란이 결론 없이 장기적으로 흐르자 수입 쇠고기든 국내산 쇠고기든 먹지 말자는 쇠고기 기피증이 확산되고 있다”며 “국민 안전을 해치는 쇠고기를 수입해서는 절대 안되겠지만 한우고기 소비 위축에 따른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폭로전 형식으로 논란만 벌이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될 경우 한우 산업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등 불안감을 조성하는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에도 농민들은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가뜩이나 불안해하는 농민들에게 더 큰 불안감을 안겨 홍수 출하를 유도했고, 결국 물량 증가에 따른 산지 소값 하락과 농가 수익 감소로 이어지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한우 비육우 300마리를 사육 중인 김성진씨(26·전북 익산시 함열면)는 “국회의원 선거가 끝난 후 한·미 양국이 쇠고기 협상을 벌이자 대다수 언론이 미국산 쇠고기가 금세 들어올 것이며, 한우산업은 엄청난 회오리에 휘말릴 것이라고 보도해 농가들이 불안감에 젖어 일시적으로 홍수 출하가 나타났다”며 “나도 그때 소를 내다 팔았지만 지금 소값이 진정되는 것을 보면 속았다는 기분도 든다”고 말했다.
◆한우산업 대책 마련에 국민적 힘 모아야=농민들은 정부가 국제기구의 기준을 적용해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인정하고 있고, 어차피 수입을 허용한 것이라면 수입 이후 한우농가들에게 미칠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내 한우산업 발전을 위한 대책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시장에서 송아지가 딸린 어미소를 330만원에 구입한 성공훈씨(57·충북 충주시 이류면)는 “농민들은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온 이후 과연 한우산업이 제대로 버텨나갈 것인지에 대해 가장 궁금해한다”면서 “정부는 한우산업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 농민들은 한우만 키워도 먹고 살 수 있을지에 대한 명확한 답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농민 권상일씨(60·경북 영주시 창진동)도 “앞으로 한우값이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몇달 전 큰 소를 팔았어도 송아지 입식을 미룬 채 계속 축사를 비워 놓고 있다”면서 “한우 농가들이 계획적으로 정상적인 양축활동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농촌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농민들은 정부가 한우의 품질 경쟁력만 강조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한우 품질 경쟁력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너도나도 고급육 생산에 나설 경우 고급육은 공급량 증가에 따라 그만큼 희소가치가 줄어들 것이란 설명이다. 따라서 농민들은 한우 브랜드 정책에 중저가 브랜드를 양성하는 방안도 마련해 서민층을 겨냥한 한우도 상품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사료값 문제 해결이 가장 촉박해=농민들은 거듭된 사료값 인상에 대해 한마디로 ‘소가 소를 먹는다’는 표현을 서슴없이 했다. 소를 굶기지 않기 위해 소를 팔 수밖에 없을 만큼 사료값이 비싸다는 얘기다. 실제 사료값은 2006년 11월부터 인상 행진을 시작해 5월1일까지 모두 7차례에 걸쳐 50% 이상 상승했다.
한우 번식농가 조성봉씨(65·충북 단양군 영춘면)는 “송아지 한마리를 생산해 팔 때까지 임신기간 10개월에 송아지 비육기간 6개월 등 16개월이 걸리는데, 이때 아무리 조사료를 쓴다고 해도 사료값이 너무 부담돼 사육을 포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영주 우시장 중개인 김종록씨는 “오늘 장에 나온 켤레소는 소 주인이 사료값 부담을 이기지 못해 어미소와 송아지를 통째로 처분하려고 내온 것”이라며 “사료값이 추가로 더 오르면 켤레소와 임신우도 넘쳐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농민들은 보통 한우 수송아지를 현 시세인 170만원에 구입해 600㎏에 이를 때까지 사육하려면 사료값만 170만~200만원 정도 들어간다고 밝힌다. 이 경우 송아지 구입비와 사료비만 합쳐도 340만~370만원이나 돼 생체 1㎏당 7,000원(600㎏ 기준 420만원)은 받아야 겨우 본전을 건지는 셈이지만 사료값이 오르면 그만큼 채산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번식우와 비육우 등 한우 300마리를 사육 중인 서춘권씨(57·전북 익산시 성당면)는 “지금 농민들은 소값 하락, 사료값 인상, 부채 가중이란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한번만 더 사료값이 오르면 늘어난 빚 때문에 사육을 접는 농가가 속출하고, 농촌에 줄도산 사태가 올 것”이라고 정부 대책을 촉구했다.
농민들은 정부가 사료 긴급 구매자금 1조원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는 단기 대책에 불과하다며 일본처럼 사료가격 안정기금제도 등을 도입해 장기적으로 축산농가의 사료값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농민들은 또 조사료 사용을 늘리고 싶어도 조사료 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농지 확보가 어려운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
|
|
출처 : 농민신문 2008년 5월 23일자 기사
|
|
|